다모아...

박요리

그래나야 2007. 8. 4. 13:01
흥부네 박 터지듯 즐기는 박요리
글/박중곤(소설가, 「전원생활」편집부장)
잘 말린 박고지.
여러 가지 음식재료로 쓰이는 박고지에는 항노화(抗老化)물질이 들어 있다.
오래 나둬도 잘 퍼지지 않고 쫄깃쫄깃한 박냉면.
박버섯불고기
박수제비
박수제비
박낙지전골
박낙지전골
경기 고양시에 자리잡은 박음식 전문점 '흥부네 박 터지는 날'
박은 낙지와 잘 어울린다. 옛날엔 밀이 익어갈 무렵 수확한 밀을 아녀자들이 맷돌에 나가 낙지를 캐왔다. 이렇게 만들어 먹던 것이 박낙지전골이다.
박만두. 박고지를 넣어 빚는다.
(주)양산박의 박국수
박속을 썰어 냉동하면 1년 내내 음식 재료로 쓸 수 있다.

사람들은 박을 수확하면 잘 타서 바가지를 만들어 사용했다. 박은 바가지 외에 몇몇 음식 재료로도 쓰였다. 껍질을 깎아내면 나오는 박 속을 잘게 썰어 말려 두었다가 나물로 무쳐 먹거나, 국을 끓여 먹었다. 요즘은 박 수제비와 칼국수, 국수, 냉면, 낙지전골, 버섯불고기 등이 인기다. 이들 음식을 파는 음식점들도 늘고 있다.

박처럼 한국인의 정서에 잘 부합하는 식물이 또 있을까. 초가지붕 위의 박꽃과 박 덩이에 관한 추억은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한두 자락쯤 지니고 있다. 애잔한 미소 띤 하얀 박꽃은 언제 보아도 수수한 느낌을 주었다. 달빛 출렁이는 밤, 지붕 위에 뒹굴던 박은 실로 정겨운 대상이었다. 월하미인(月下美人)이 방긋 웃으며 마악 사랑방으로 올라오는 듯한 자태였다고나 할까. 박은 그렇게 가을날 한국인의 곁에 있으면서 향토적인 정서를 일깨웠다. 초가지붕과 온 동네가 그 박으로 하여 환하게 살아 오르는 듯했다.
사람들은 박을 수확하면 잘 타서 바가지를 만들어 사용했다. 박은 바가지 외에 몇몇 음식 재료로도 쓰였다. 껍질을 깎아내면 나오는 박 속을 잘게 썰어 말려 두었다가 나물로 무쳐 먹거나, 국을 끓여 먹었다. 박 섞박지나 박김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궁중에서의 박 요리는 훨씬 다양했다. 요새 신세대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신세대들은 대부분 박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하기야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시골에서도 오래 전에 초가집이 사라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박은 이제 나이 든 이들의 추억 저편에 아스라이 묻혀 있을 뿐이다. 더욱이 플라스틱 바가지가 쏟아져 나오면서 박은 일찍이 기댈 땅을 잃고 우리 곁을 떠났었다.
그렇던 박이 근래에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다양한 박 요리가 등장하면서 산에, 들에 가꾸는 이들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박 요리로는 박 수제비와 칼국수, 국수, 냉면, 햄버거, 떡볶이, 낙지전골, 버섯불고기, 샌드위치 등이 선보인다.
이들 음식은 박 음식에 애착이 많은 이들이 개발한 것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현재 경기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에 자리잡은 ‘흥부네 박 터지는 날’(전화 031-919-3389)을 비롯, 서울과 경기 지역의 일부 전문 요리점에서 박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박 음식을 되살린 이들은 박 공예가 한경수 씨와 (주)양산박 주광규 사장이다. 한경수 씨는 경남 양산과 울산에서 20여 년간 박에 대해 연구하며 다양한 박 공예품을 만들어 온 이다. 그는 ‘흥부 이래 박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으로 불린다. 박 연구에 관한 공로로 1993년 석탑산업훈장을 받았고, 이듬해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에서 열린 국제식품대회에서는 국제식품상을 받기도 했다.
주광규 사장은 오래 전부터 토속 음식에 깊은 관심을 보여 온 사람이다. 그가 한경수씨와 인연이 닿으면서 박 음식이 시리즈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개발한 양산박버거와 양산박샌드위치는 독일과 일본의 식품박람회에서 호평을 받아 원료 박이 대량 수출된 적도 있다.
한경수씨와 주광규 사장이 개발해 ‘흥부네 박 터지는 날’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음식은 박버섯불고기와 박낙지전골, 박수제비, 박냉면, 박칼국수 등이다.
박버섯불고기는 질 좋은 한우고기 위에 박고지를 올리고 각종 채소와 팽이, 느타리, 표고 등의 버섯을 함께 넣어 끓인다. 하얀 박고지가 한우고기의 맛을 흡수해 고기보다 더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박고지에 다량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 성분이 쇠고기의 콜레스테롤 성분을 녹여주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음식을 다 먹은 뒤 맥반석 판 위에 비벼먹는 볶음밥의 맛도 일품이다.
박낙지전골은 박고지와 각종 버섯, 낙지, 새우, 게, 각종 채소 등을 넣어 끓이는 것으로,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자랑한다.
일반적으로 칼국수와 수제비는 끓인 뒤 시간이 조금 지나면 풀어져 먹기 곤란해진다. 하지만 박칼국수와 박수제비는 다르다. 오래 놔둬도 잘 퍼지지 않고 쫄깃쫄깃한 장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좋아한다. 일반 칼국수나 수제비는 잘 안 먹는 아이들도 박칼국수나 박수제비를 한번 맛보면 자꾸 먹으러 가자고 떼를 쓴다. 이것은 전통음식도 잘만 요리하면 서구 음식에 길들여진 신세대에게도 얼마든지 어필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사례일 것이다.
‘흥부네 박 터지는 날’에서는 손맛을 더해 손님의 미각을 더욱 즐겁게 하기 위해 손으로 수제비를 빚고 칼국수를 뽑는다. 반죽을 할 때 미리 박고지를 곱게 갈아 밀가루와 섞어 사용한다. 심지어는 양념에도 박고지 간 것을 넣어 박의 심심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식탁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다. 박 음식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덧 상념은 고향집으로 날아가, 자연 속에서 천진무구하게 뛰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주광규 사장은 입만 열었다 하면 박 예찬을 그치지 않는다.
“박을 가까이해야 해요. 그래야 오래 살 수 있어요. 요새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뇌출혈이다, 심근경색증이다 해서 퍽퍽 쓰러지는데, 박 요리를 자주 먹으면 그럴 염려 없어요. 박에는 사람을 불로장생하게 하는 항노화 물질이 있어요.”
그래서일까. 옛날 궁중에서는 연회상이나 수라상을 차릴 때 박고지가 요리 재료로 반드시 사용되었다고 한다. 즉, 궁중의 채소 요리 가운데 박누름적을 빼놓을 수 없으며, 박장아찌는 동과 장아찌와 함께 곧잘 임금의 밥상에 올랐다. 『조선왕조 궁중연회 음식의 분석적 연구』(이효지 저)란 책에 보면 대궐에서 금중탕(錦中湯), 완자탕(完子湯), 저포탕(猪胞湯), 칠기탕(七技湯), 만증탕(饅蒸湯) 등의 각종 탕을 끓일 때 거의 대부분 박고지가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박이 왕족의 노화 방지와 상궁, 궁녀들의 미용식으로 두루 쓰였음을 의미한다.
『본초강목』, 『동의보감』, 『향약대사전』, 『향약집성방』, 『명의별록』 등의 옛 의서들은 하나같이 박의 질병 예방 및 치료 효과에 대해 적고 있다. 즉, 종기를 다스리고, 요도에 이롭고, 심폐기능을 좋게 하며 담석을 없앤다는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아무튼 박은 태양, 달, 바람 에너지가 함축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으뜸 건강 식품입니다.” 주 사장이 덧붙이는 말이다.
박이 자라던 초가지붕은 재미있는 공간이다. 우선 짚이 있어 덩굴이 잘 기어 나갈 수 있고 바람도 잘 통한다. 논밭과 달리 정갈할 뿐 아니라, 달빛과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다. 박은 그런 데서 보름달같이 둥그렇게 자라 휘영청 밝은 달밤을 더욱 밝게 했다. 요즘은 초가지붕이 아니라 밭에서 재배하는데, 그런 밭일망정 초가지붕과 유사한 조건을 갖춰 놓아야 잘 자란다. 그렇게 해서나마 가을날 박 수확이 늘고, 그것으로 만든 소박한 음식을 다시금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복이 아닐 수 없다.
강남 갔던 제비가 물어다 준 박 씨로 기른 흥부네 박 이야기는 소설적 허구이다. 그러나 흥부네 박은 이제 많은 보물을 쏟아내지는 못하게 됐어도 오늘날 ‘양산박’과 ‘흥부네 박 터지는 날’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보물들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바로 토종 생명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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